일본, 스가 요시히데 씨 70.5%를 득표해 자민당 총재 당선

이승민 특파원 happydoors1@gmail.com | 2020-09-14 22: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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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선에서 스가 요시히데 씨의 당선이 확정되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자민당 총무처 제공.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14일, 도쿄·미나토구(港区) 프린스호텔 신다카나와(新高輪)에서 자민당 총재 선거가 열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71) 씨가 제26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스가 요시히데 씨는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94명과 자민당 도도부현(都道府縣) 지부연합회 대표 141명 등 535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유효표 534표 가운데 377표(70.5%)를 얻어 압승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은 89표(16.6%),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68표(12.7%)를 얻는데 그쳤다. 스가 씨는 이례적으로 파벌 없이 무파로 출마해 주요 파벌들의 지지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아키타현의 농촌에서 태어난 시골 청년 스가, 그는 꿈을 품고 도쿄에 상경하여 혈연도 지연도 없는 정치세계에 뛰어들어 일본 정치계의 정상에 올랐다. 오는 16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제99대 수상에 취임하게 된다. 임기는 아베 총재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까지다.

 

▲ 아베 전수상이 스가 자민당 총재 당선자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스가 자민당 총재 당선자는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른바 흙수저다. 1948년 12월 6일 아키타(秋田)현 아키노미야촌의 가난한 농가에서 스가 와사부로(菅和三郞·2010년 별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시절 골판지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등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부친 와사부로는 전쟁 중 남만주철도에서 일했고 만주에서 패전을 맞은 후 아키타현으로 돌아와 딸기농업에 종사했다. 스가는 고교 졸업 후 도쿄로 단신 상경해 박스공장이나 츠키지(築地) 시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호세이대(法政大) 정치학과 야간에 입학하여 주경야독했다.


졸업 후 1973년 겐젠(建電)설비주식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2년 후 1975년 자민당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 1987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96년 중의원(국회의원) 선거에서 가나가와현 2구로 출마해 첫 국회의원 당선,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했다.


스가 요시히데가 중앙 정치에 입문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자민당 총무 등 중직을, 아베 신조 내각 1기 때는 총무대신으로 입각해 아베 총리를 보좌했다.


아베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자민당 국회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자민당 조직운동본부장, 홍보본부장 대리 등 조직 및 홍보 업무를 거쳐 2012년 아베 총리가 권좌에 복귀하면서 내각관방 장관에 임명돼 7년 넘게 장관직을 수행했다. 

 

▲ 스가 요시히데 씨가 자민당 총재선에서 7할 이상의 몰표를 획득 압승했다. 사진 NHK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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