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나미코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다

이승민 특파원 happydoors1@gmail.com | 승인 2021-12-06 16: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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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미코 씨를 요코하마의 일본식 요리집에서 만났다. 나미코 씨가 지나 온 이야기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사진 = 이승민특파원)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상냥한 도쿄 아가씨 나미코는 회사 동료인 구니오를 만나 결혼을 하여 요코하마에서 살게 되었다. 남편 구니오는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시누이는 결혼하여 치바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당뇨에 중풍에 고혈압까지 있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을 자주 오가야 했다. 휠체어가 아니면 몇 걸음도 이동할 수가 없었고 입맛도 까다로워 아무 것이나 먹지를 못했다. 하지만 나미코는 조금도 불평없이 당연한 일로 여기고 아버지를 지성으로 모셨다. 

 

병간호를 비롯하여 일련의 뒷바라지를 시원시원하게 해냈고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드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방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정돈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몸이 너무도 불편하고 힘들다 보니 매사가 신경질적이었다. 본래 말씀을 많이 하시는 성격이셨기에 아들에게 이런저런 훈계가 많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습관처럼 잔소리로 여겼다. 

 

아들이 받아주지 않으니 아버지의 훈계는 더 늘어갔고 아들은 꾸중 만 늘어나는 아버지가 몹시 싫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반항심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식이니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계는 또 길어졌다.


나미코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짜증적인 심기를 어떻게 하면 밝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래 그렇지 하며 박수를 쳤다. 아버지 방에 아름다운 꽃병을 사다 놓고 오디오를 설치했다. 날마다 예쁜 꽃으로 방을 밝게 했고, 집안에는 아버지가 젊은시절 좋아하셨다는 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때로는 말동무가 되어 드렸고 병원에 가실 때는 언제나 휠체어를 밀며 비서처럼 딸처럼 상냥하게 동행했다. 가끔씩 밖으로 모시고 나가 맛있는 요리도 사드렸고 문화공연도 함께 보았다. 나미코는 아버지의 건강과 기쁨을 위해서라면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뭔가 부족해했다. 아들 구니오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칭찬보다는 꾸중을 주로 하셨다. 분명 아들이 잘 되라고 하시는 말이었지만 구니오는 오늘도 아버지의 말씀이 모두 잔소리로 들렸다. 아들은 아버지와 떨어져 살고 싶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온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 잔소리 없는 세상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싶었다.


구니오는 사랑하는 나미코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항상 걸림돌이었다. 급기야, 구니오는 나미코에게 아버지와 떨어져 살자고 사정했다. 아버지를 노인의 집에 보내자는 것이었다. 나미코는 놀라 한마디로 거절했다. 저렇게 불편하신 아버지를 그런 곳에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구니오는 나미코에게 부탁도 해보고 애원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자 화가 난 구니오는 결혼생활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혼하자고 했다. 아버지를 두둔하는 아내도 싫어지고 만 것이다. 날마다 성질을 부리는 남편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나미코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고 말았다. 이혼한 구니오는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이제 남남이 되었다. 구니오도 남이요, 시아버지도 남이다. 하지만 나미코는 집을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도장을 찍어놓고, 허약해져가는 아버지를 홀로 남겨놓고 떠날 수는 없었다. 나미코는 변함없이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했다.


건강을 위한 식단에 신경을 많이 썼고 마음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던 지난 가을 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숨을 거두기 전 가족 앞에서 한마디를 남겼다.


“이 땅을 여행하면서 나미코 며느리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목타는 인생길에서 며느리는 시원한 시냇물이 되어줬다. 내가 살던 집을 나미코에게 주어라.”


그렇게 유언을 남기신 아버지는 아들과 나미코의 손을 꼭 잡고 숨을 거두셨다. 구니오는 아버지의 죽음에 펑펑 울었다. 지난 날 아버지의 잔소리들이 모두 사랑의 메이리가 되어 마음을 울렸다. 상을 치룬 구니오는 나미코 앞에 무릎을 꿇었다.


“20년간 아버지를 보살펴줘 고맙습니다. 이 불효막심한 자식을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나미코는 결혼해서 10년, 이혼해서 1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버지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구니오는 나미코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식이 후회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계셨다. 나미코는 구니오의 마음을 받아 줘 다시 한 가족이 되었다. 카마타 집안의 대를 이어줄 아들 유스케와 함께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잔소리를 스승으로 삼아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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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연님 2021-12-07 09:10:50
나미코 씨의 아름다운 효심에 감동할뿐입니다.
한국에도 없는 소식이 일본에 있었다니 놀래봅니다.
이제 한가정을 이루셨으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김상덕님 2021-12-07 07:14:51
한국에는 이런 효부 과연 있을까요 ?
여자쪽에서 먼저 나가살자고 하는 한국의 풍조와 대조되는 사연이군요.
나미코 씨의 아름다운 마음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정미라님 2021-12-07 07:12:25
이 시대 이런 효부 어디서 들어보기 힘드는데 참으로 훈훈한 뉴스네요.
일본인을 욕하지만 말고 이런 것은 배워야 합니다.
무조건 일본을 나쁘게만 보는 한국인들의 풍조도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나미코 씨의 천사같은 마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정화영님 2021-12-07 07:07:34
정말 일본판 심청이군요.
감동입니다.
요즘 그런 사람 한국에 있을까요 ?
효부비를 세워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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